“괜…… 찮아?”
“전혀.”
“역시…….”
소녀는 두 손으로 축축이 젖은 곳을 가리며 한숨을 토해냈다.
그 순박한 모습에 소년은 묘한 미소를 드리웠다.
봉긋이 솟은 가슴 너머의 새빨개진 얼굴.
부끄러움과 황망함으로 살며시 일그러진 자그마한 얼굴이 그렇게나 예쁠 수 없었다.
예뻐서, 너무 예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.
그런 그의 속도 모른 채 소녀가 입술을 달싹였다.
“……하지 말라고 했잖아.”
“싫어. 이렇게 좋은데, 내가 왜?”
물빛이 섞인 동공이 삽시간에 커다래진 것을 본 소년은 단호히 말을 이었다.
“나랑만 하자. 이런 짓은 부끄러우니까, 나랑만 해. 죽을 때까지.”
1988년, 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늦겨울.
성인의 경계선을 이제 막 밟은 어린 연인은 서로를 어루만지는 손길 하나하나에도 가슴이 벅차올랐다.
첫 순결이 깨지며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특별했으니까. 하지만……
“배 속의 아이가 우리 도흔이의 아이인지 아닌지, 내가 어떻게 믿지?”
서로에 대한 믿음은 헛된 것에 불과했고, 영원할 것 같았던 궤도는 결국 끝을 맞이했다. 그리고……
1998년, 건조한 열기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.
다시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인연이 깨어진 궤도의 끝에서 운명처럼 이어졌다.
‘기적’과 ‘복수’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.
“네 이름이 아마…… 최도흔, 그랬을 거야. 나에게 빛을 가장한 괴물 같은 약속을 던져 주고서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 지긋지긋한 놈.”
“……!”
“이제 와서 날 알은척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 때문이지? 술자리는 이미 끝났으니, 당장 사라져.”
복수심을 내리누른 채 냉정한 눈동자를 빛내는 여자, 지하.
그런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재회의 기적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, 도흔.
잔혹하게 변질한 아름다운 동화의 끝에서 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뫼비우스는 과연 영원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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